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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Marriage

이혼 후 6개월 독방에서 자장면만 먹었다는 성악가 김동규

성악가 김동규는 노르웨이의 음악 그룹 시크릿 가든의 노래 'Serenade to Spring'에 가사를 붙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로 유명한 성악가입니다.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과 함께 매년 10월만 되면 라디오에서 단골로 꼭 등장하는 노래죠. 

 


과거 성악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김동규가 어떻게 세계적인 바리톤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유럽에서 촉망받던 성악가가 이혼 후 한국으로 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살펴볼게요. 

 

성악가 김동규

성악가 김동규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로 56세, 방송인 김국진, 배우 김상중, 가수 김태원 등이 같은 나이 1965년 생 한국 연예인들이고, 할리우드로 눈을 돌리면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벤 스틸러와 같은 배우들이 동갑내기 나이입니다.

김동규는 작곡가 아버지와 소프라노 출신 어머니 덕분에 중학교 어린 시절부터 오페라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듣기 싫어도 집안에서 오페라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집에 오페라 관련 서적과 자료들이 그야말로 집대성되어 있는 그런 환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김동규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성악을 어린 시절부터 강제로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성악이 일상인 환경을 조성해 놓았고, 아들 김동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비로소 성악을 전공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그때서야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아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성악가 김동규

성악가 김동규는 연세대학교 성악과 재학 시절부터 중앙일보사에서 개최한 중앙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 후에는 1989년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피가로 역으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후 김동규는 세계적인 성악가의 꿈을 품고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 음악원 유학을 떠나는데, 당시 베르디 국립 음악원에 만점 수석 입학을 한 김동규가 노래를 하는 것을 듣고 한 선생님이 너는 왜 극장에서 노래를 해야 할 사람이 유학을 왔느냐는 극찬을 했고, 실제로 이탈리아 유학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무대에 서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재능이었죠.

 

성악가 김동규

김동규의 유학 생활은 단연코 두각이었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던 김동규는 학교 수업 과정을 단 1년 만에 모두 수료했고, 이탈리아 유학 2년 만인 1991년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 콩쿠르인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 1위를 하며 일약 성악 최대 기대주로 부상을 합니다. 

 


아울러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당시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김동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로 굉장한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김동규와 조수미

유럽 무대에서 인정을 받은 김동규는 미국 무대에서의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거절하며 유럽 무대 정복을 꿈꾸지만, 하지만 뜻밖에 결혼 생활이 김동규의 발목을 잡습니다. 

성악가 김동규는 연세대학교 은사였던 교수님의 1살 연상의 딸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김동규의 아내 역시 성악가 출신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함께 떠났고, 이탈리아에서 성악가로 무대를 누비던 지난 1995년 아들을 낳고 함께 살았었는데요. 

 

성악가 김동규

그러나 유럽 무대에서의 성악가로서의 바쁜 생활 때문에 김동규는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고, 심지어는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마저 유럽 공연 도중 어느 공중전화 부스에서 들어야 했던 가정 생활로 인해 부부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고, 결국 지난 1999년 가을 김동규는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혼은 성악가 김동규의 모든 꿈과 계획을 앗아 갔다고 합니다. 성악가 김동규는 이혼 후 이탈리아 법에 따라 거의 전 재산을 양육권을 가진 아내에게 주어야만 했고, 이혼하면서 견뎌야 했던 스트레스 때문에 한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진짜 가방 하나만 들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악가 김동규

한국으로 돌아온 김동규는 한동안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이혼 후 6개월 동안은 오피스텔 커튼을 쳐놓고 피아노 하나, 침대 하나 놓고 영화 '올드보이'처럼 독방에 혼자 들어앉아 자장면만 시켜 먹으며 보냈다고 합니다. 

 


그때 김동규를 독방에서 꺼내 준 사람이 MBC 라디오 '골든디스크' 진행자였던 김기덕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기덕은 김동규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크로스오버 뮤직을 제안했고, 그 결과물로 나온 '디투어'라는 앨범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 앨범의 수록곡인 '10월의 어는 멋진 날에'는 말 그대로 김동규의 인생의 전환점(디투어)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동규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노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이후 성악가 김동규는 지난 2015년까지 KBS 제2라디오에서 '매일 그대와 김동규입니다'를 진행했고, 2015년부터는 SBS 예능 '불타는 청춘' 초기 멤버로 활약을 하는 등 이혼 후 인생을 살기 시작했고, 현재는 상명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성악가 김동규가 이혼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전 부인과의 사이에 있었던 아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1995년에 아들을 낳았으니 벌써 25살은 되었겠는데요. 모쪼록 성악가 김동규 님이 이혼의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는 좋은 인연을 만나는 소식이 들여왔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많은 활약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악가 김동규와 아들 어린 시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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