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인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케이시 애플렉이 이번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서지 않을 것임을 확정했습니다.
전년도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여우주연상 수상자에게 시상을 하는 것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구한 전통입니다만, 그런 전통을 깨고 케이시 애플렉이 왜 시상을 고사했는지, 빤히 알 만한 이유이기는 하나 사정을 알아보기로 할게요.
벤 애플렉 동생 케이시 애플렉
배우로서는 형보다 일찍 데뷔했고 영화판에서 꽤 뼈가 굵은 케이시 애플렉인데도, 벤 애플렉의 동생으로 가장 유명할 수밖에 없죠. 형이 워낙 유명해야 말이죠. 케이시 애플렉은 1975년 8월 12일에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지워싱턴 대학교를 나와 아이비리그인 컬럼비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니 형보다도 오히려 학력 스펙이 좋은데요. 키가 175센티미터로 192센티미터나 되는 형 벤 애플렉에 비해서는 작은데, 수염 없고 짧은 머리의 외모가 드러나는 얼굴을 보면 벤 애플렉과 역시 상당히 닮았습니다.
'아임 스틸 히어' 성추문 사건의 전말
2010년에 케이시 애플렉은 호아킨 피닉스가 힙합 가수에 도전한다는 내용으로 '아임 스틸 히어'라는 모큐멘터리를 감독하는데요. 이때 케이시 애플렉이 자신이 고용한 맥댈래나 고르카라는 여성 촬영감독과 '굿 윌 헌팅' 때부터 맷 데이먼, 애플렉 형제와 친분을 맺어온 매우 막역한 사이인 프로듀서 아만다 화이트에게 두 명에게 성추행을 하고 성적 발언을 해서 후에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강간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해도 영화 제작 동안 지속적인 희롱과 성적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한 것은 사건이 재판까지 가지 않고 합의가 되면서 기정사실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케이시 애플렉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배우 커리어 최고의 시기를 보내면서 더 크게 불거져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사건을 요지경으로 만드는 점 한 가지. 지금은 이 사건의 여파인지 이혼을 했지만, 당시에 케이시 애플렉이 주인공인 호아킨 피닉스의 동생, 그러므로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기도 한 써머 피닉스와 결혼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고르카에 대한 문제의 성추행이 일어났던 곳은 호아킨 피닉스의 집이었죠.
브리 라슨의 냉대, #MeToo 운동
2017년에 케이시 애플렉은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주연상을 휩쓸었는데요. 시상자로 나온 브리 라슨에게 찬바람이 쌩쌩 도는 냉대를 받았죠. 브리 라슨이 작은 허그 한번 주지 않고 트로피만 주고 쌩 돌아서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뭐 어쩌면 합의가 됐다는 이유로, 사건의 중함이 좀 약하다는 정도로 케이시 애플렉의 사건은 어느덧 묻히고 조용히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년이 어떤 해였나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스캔들이 게이트 수준이 되어 할리우드에 종사하는 남녀노소, 안젤리나 졸리 같은 대스타에서부터 아역 때 겪은 일을 터놓은 배우까지 #Me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던 해입니다.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에 배우들이 마이크를 잡고 가만히 있을 리도 없구요. 지난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정점이었고, 오스카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 리 없는 상태에서 케이시 애플렉 입장에서는 봉변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겠죠.
당연한 생삭이었겠죠. 위에서도 얘기했듯 전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브리 라슨이 '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해서 자신에게 트로피를 줄 때 무대 아래 반응이 아주 냉랭했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도 더더욱 분위기가 쌩한 상태에서 아카데미 무대에 서기가 쉽지 않았겠죠. 여튼 아직 대체 시상자는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소식이 나오는 대로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