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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후보 김문수는 왜 극좌 노동운동가에서 극우 올드보이가 되었나?

오늘 KBS에서 열린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가 새삼 화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동성애자 발언으로 또 물의선상에 올랐습니다.


박원순 시장 아래 퀴어축제가 열렸는데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 동성애가 인정되면 에이즈와 출산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를 제기하다가 정의당 김종민 후보에게 역공을 당했는데요.



서울대학교에 다니면서 강렬한 노동운동을 하다가 김문수 변절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정치판에서 꿈과 뜻을 펼치려 했던 파란만장 김문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는 1961년 8월 27일에 경북 영천에서 출생합니다. 출신상으로는 전형적 TK이지만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후 열혈 노동운동가로 활동합니다.


70년대 초반, 전태일 열사의 산화가 있고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노동운동에 투신해 한국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노동운동에서는 정말로 전설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70년대 당시에는 없던 말이지만 대표적인 PD, 쉽게 말하면 노동자들을 중시하는 노선의 학생운동에서 수장 격이었고, 좌파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좌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도 좋아서 서울대 동문 몇몇과 공저한 '사회주의자의 실천'이라는 책 시리즈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PD 노선 학생운동가들의 경전이었습니다.


농민운동가였던 이재오와 1990년대 초반에 민중당이라는 당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구요. 그러던 그가 1994년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에게 신학국당으로 영입이 됩니다.


그렇다면 김문수 후보는 열혈 노동운동가에서 무슨 이유로 보수여당에 들어가는 '변절'을 한 걸까요? 우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동구권 공산주의 나라들의 몰락이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의 붕괴와 함께 운동권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크게 약화된 이유가 있었겠죠. 거기에 1980년대에 김문수 후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없었던 주체사상파, NL이라는 학생운동 노선이 생겨납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NL 운동권이 학생운동의 대세가 되면서 김문수 후보가 회의를 느끼며 운동권을 이탈하고 보수지만 과거 세력을 없애는 YS의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권 시절의 사상을 전향하고, 또 보수당에 들어가는 것까지야 어찌어찌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는 그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행보가 시쳇말로 꼰대, 올드보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엄청나게 회자되었던 119 전화 사건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119에 전화를 건 김문수 경기도 전 지사가 나 경기도지사 김문수인데,를 무한반복하며 용건을 말하는 119 신고전화가 인터넷에 퍼진 것입니다.


김문수 전 지사는 이에 대해 전화를 걸어 관등성명을 댔을 뿐이라며, 장난전화가 빗발치는 119라고 해도 끝까지 응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명으로 더 거센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공직자 갑질 논란의 시조새로서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가 등극한 사건이었죠. 수많은 패러디와 편집 음성 파일이 등장했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사상의 전향이 변절이라고 꼭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들어가시는 연세에 이런 행태로 꼰대, 올드보이로 불리는 김문수 후보입니다.


현재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경합에서 김문수 후보는 박원순 현 시장의 지지율에 압도적인 차이인 15퍼센트 내의 지지율로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와 경합을 벌이는 중입니다.


김문수 정신감정이라는 검색어도 보이던데요. 무슨 생각으로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는지도 참 모를 일이기도 하고, 한때 대권잠룡이었다가 결과가 보이는 싸움에 뛰어들었나, 참 정치인들이 겪는 선거중독이란 여느 중독 못지않구나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