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된 MBN 시사 프로그램 '현장르포 특종세상'에 탤런트 견미리의 전 남편이자, 배우 이유비와 이다인의 아버지인 탤런트 임영규의 근황이 소개되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인기 탤런트 임영규와 견미리의 화려했던 결혼과 결별, 그리고 그 이후 두 사람의 사연 많은 인생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탤런트 견미리는 1965년생으로 올해 나이 56세입니다. 1984년 MBC 1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후 드라마 '한명회', '장희빈', '대장금', '주몽', '이산', '무자식 상팔자', '가족끼리 왜 이래' 등에 출연한 배우로, 젊었을 적 상당한 미모에, 극중 부잣집 사모님 이미지에다가, 지금도 미중년 여배우의 대명사로 자주 거론되는 상당한 동안의 배우입니다.
견미리보다 9살 연상의 임영규 역시 지난 1980년 MBC 1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후, '설중매', '대원군', '일출봉', '이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등의 드라마에 출연한 1980년대 인기 탤런트였는데요. 특히 시청률 50%를 넘나들었던 드라마 '설중매'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산군을 연기하며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탤런트 임영규는 연기자로서뿐만 아니라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도 유명했습니다. 임영규의 아버지는 1960년대에 공업용 원료사업을 크게 해서 당시 박정희 정권 하에서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굵직한 기업의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임영규는 부모님과 7남매에다 아버지 운전기사, 어머니 운전기사, 가정교사 3명에 가사도우미 2명, 정원사에 집사까지 있는 집에서 총 18명이 사는 호화로운 생활을 했는데, 당시 삼성 이병철 회장이 일본에서 설탕을 수입하려는데 자금이 부족하자 임영규 아버지에게서 돈을 빌려 갔을 정도로 전설로 회자되는 임영규 집안의 재력이었다고 합니다.
탤런트 임영규가 견미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지난 1984년이라고 합니다. 견미리가 MBC 17기 공채 탤런트로 막 데뷔를 했을 당시였는데요.
그렇게 연예계 선후배로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은 지난 1986년에 결혼 발표를 했고, 이듬해인 1987년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주목받은 미녀 배우 견미리와 재벌급 재력가 집안 출신의 유명 탤런트 임영규의 결혼식은 스타 부부 결혼식으로 꽤 큰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스타 탤런트 부부였던 임영규와 견미리는 결혼 이후 두 딸 이유비와 이다인을 낳고(후에 견미리가 재혼을 하면서 두 딸의 성이 바뀐 것입니다) 잉꼬부부로 사는 듯 보였지만, 결혼 7년 만인 지난 1993년에 이혼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혼 사유는 어렸을 적부터 모자란 것 없이 모든 것을 지니고 생활했던 탤런트 임영규의 방탕한 생활이 원인이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탤런트 임영규는 과거 방송에 출연해서, 연기자로 한창 잘나갈 때였음에도, 촬영 핑계 대고 늦게까지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며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4살, 2살 두 딸의 아버지로서 이혼만은 막고 싶었지만, 이미 마음을 떠난 견미리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이 너무 과했음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혼 후 임영규와 견미리 두 사람의 생활은 거의 180도 다른 인생이 펼쳐집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돈을 빌리러 올 정도의 재력가 아들이었던 임영규는 이혼 후 신세를 한탄하며 살다 현실을 도피하고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이종사촌 형의 무역회사를 부채 탕감 조건으로 넘겨받아 운영하다, 급기야 아버지가 이혼 후 유산으로 물려준 강남의 165억 대 빌딩까지 날리고 모든 것을 잃고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당시 남은 돈이라고는 아파트 전셋값 정도가 전부였는데, 형, 누나, 동생들한테 또 억대의 돈을 빌려서 계속 무리한 사업을 지속하다 아파트 전셋값까지 다 날려먹고, 새우잠을 자야 하는 고시원 생활에서부터 공원 노숙자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지난 2010년 당시 식당에서 주차요원으로 일하며 찜질방에서 생활을 하던 임영규의 근황이었는데, 현재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 우연히 만난 전도사님 덕에 교회에서 일을 하며 근근이 최저 생활 수준만 유지하고 있다니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활이 그다지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이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을 뿐입니다.
반면 임영규의 전 부인 견미리는 임영규와의 이혼 당시 위자료는커녕 임영규가 남긴 빚까지 갚아야 했지만, 두 딸을 오롯이 혼자 힘으로서 키워내며, 이혼 2년 후인 지난 1995년 코스닥 상장 기업 대표인 이홍헌 씨와 재혼을 해서, 두 딸 이유비, 이다인 이외에도 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됩니다.
힘들어하는 여동생 견미리를 위해 친오빠가 집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때 같이 자주 집에 오곤 했던 오빠 후배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라고 하는데요. 탤런트 견미리는 재혼 이후 '견미리 팩트'로 홈쇼핑 완판녀로 큰돈을 벌고, 주식 투자 분석가로 알려져 있던 견미리의 현 남편 덕에 한때 6층짜리 한남동 저택 가치가 90억 이상이고, 보타바이오 주식 역시 100억이 넘어가기도 했을 정도로 주식 부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다만 지난 2016년 견미리의 재혼 남편인 이홍헌 전 파미셀 회장이 코스닥 상장사인 보타바이오 주가를 부풀려 유상증자로 받은 주식을 매각 차익을 챙겼다며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집안에 큰 우환이 닥쳤지만, 지난해인 2019년 8월 항소심에서 남편 이홍헌 회장에게 내려졌던 징역 4년에 벌금 25억 원의 원심을 깨고 무죄가 선고되며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재벌급 재력가 아들이라는 배경으로 한때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던 탤런트 임영규는 이혼 후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7년까지 술값 문제로 시비를 하다 경찰에 끌려간 것을 포함해서 무려 전과 9범으로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고, 위자료도 한 푼 받지 못하고 전 남편의 빚까지 안고 두 딸의 양육권만 받고 이혼을 했던 견미리는 비교적 두 딸을 잘 키워내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정말이지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게 사람 사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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